작가 노트 (명오 시리즈)
1984년 숟가락을 든 한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Uri Geller(유리 갤라)로 공영방송에서 숟가락을 휘는 마술을 보인다. 내가 접한 혹은 기억하는 첫 번째 마술이다. 마술의 개념도 몰랐던 나는 그것은 실체이며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세상이 뉴밀레니엄버그로 혼란하던 1999년 매트릭스는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영화는, 현실은 가상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며, 인간은 로봇의 에너지를 위해 존재하는 배터리일 뿐이라는 내용의 SF 물로 문화,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뉴밀레니엄의아이콘처럼 자리 잡게 된다. 특히 영화 속 네오가 소년에게, 어떻게 숟가락을 휘는 거니? 라는 질문에 소년이 한 대답은 삶 속에서 찾아야 할 화두처럼 기억 속에 남았다. There is no spoon. (숟가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이는 것과 그것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작업으로 풀어오며 통달했다 믿어온 내 시선이 여전히 세속적이며,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숟가락을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하기 위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明悟(명오)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네오는 소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마주한 크나큰 시련(영화에서는 스미스 요원으로 상징되는) 이 네오를 눈뜨게 하고 이전에 인체와 사물로 나타나던 매트릭스 공간은 디지털 기호로 변화하며 그것은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초월적 힘을 얻으며 영화는 끝난다.
작품 속 권력과 자본으로 상징되는 건축물의 이미지를 분쇄한 부산물 가루로 정교하게 묘사하고, 뿌연 유리로 덮은 것은 내가 가진 시선을 묘사하는 장치이면서 대상의 표면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결국은 본질에 다가가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작품은 인류의 부산물에 해당하는 모든 것들을 분쇄하고 두 대상(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등치 시키며, 노동이라는 인류의 숙명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