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테미예술창작센터 2020.
-생산물 시리즈-
"생산물" 시리즈는 인간의 창조와 배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체 부산물인 머리카락, 입술 껍질, 손톱, 발톱과 같은 물질들이 제가 선택한 주된 재료들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버려지고 혐오의 대상이 되지만, 이러한 부산물들은 한때 제 몸의 일부였고, 저와 떼어낼 수 없는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교육 과정 속에서 길러진 사회적 가치들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깨끗함과 정리됨을 미덕으로 배우고, 더러운 것과 자연적인 것은 배제하거나 숨기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아브젝트(Abject)' 개념은 이러한 배제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를 인간이 자아를 정립하기 위해 경계 밖으로 내몰지만,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혐오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체의 부산물은 바로 그러한 아브젝트의 형태를 띱니다. 사회는 그것을 더럽다고 배척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일부입니다. 저는 작품을 통해 이 경계를 허물고자 합니다. 유리관 속에 전시된 신체의 부산물은 관객이 기대했던 미학적 대상이 아닌, 배제된 것으로 드러나며 충격을 줍니다. 이것이 크리스테바가 말한 "혐오와 매혹"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저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교육과 사회화 과정에서 받아들인 가치들을 다시 성찰하고자 합니다. 교육은 일반적으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배제됩니다. 신중함과 반성은 종종 창조와 생산이라는 목적에 가려져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신체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신중함과 반성의 가치를 찾고자 합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일(work), 행동(action)으로 구분하며, 인간의 행위 속에서 성찰과 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노동과 일은 인간이 생존하고 생산하기 위한 활동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활동은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행동은 자기 성찰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우리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제 작품은 바로 이 "행동"의 차원에서 출발합니다. 신체 부산물은 단순한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매개체입니다. 저는 창조와 생산의 이면에 있는 반성의 과정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의 상징적인 숫자 '12' 역시 순환성과 반복성을 나타냅니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창조와 소멸을 반복하는 존재임을 상징하며, 인간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사이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숫자 12는 시간의 순환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렌트의 '행동' 개념은 여기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활동은 단순히 생산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성찰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결국, 제 작품은 인간의 존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요소들신체 부산물과 같은 아브젝트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우리가 교육과 사회화 과정에서 상실한 신중함과 반성의 가치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경계를 다시 보고, 자아와 세계 사이에서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각주:
1. Kristeva, Julia.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2.
2. Kristeva, Julia. Powers of Horror, p. 4-5.
3. Arendt, Hannah. The Human Condi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4. Arendt, Hannah. The Human Condition, p. 7-8.